감성을 깨우는 목소리, 윤설희 시낭송

2025. 4. 21. 22:46개인적인 사사로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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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말보다 더 깊이 마음을 울리는 것이 있다. 바로 ‘시’다. 그리고 그 시를 더욱 아름답게 피워내는 목소리가 있다. 윤설희, 그녀의 시낭송은 단순한 낭독을 넘어선 ‘예술’이다.

처음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마치 오래된 기억의 서랍을 하나씩 열어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잊고 있었던 감정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시가 품고 있는 정서가 조용히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단어 하나, 숨결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전하는 그녀의 낭송은 듣는 이의 시간을 멈추게 만든다.

윤설희는 단순히 시를 읽지 않는다. 그녀는 시 안에 들어가 산다. 그리고 그 시의 언어와 정서를 고스란히 목소리에 담아 우리 앞에 내어놓는다. 그래서 그녀의 시낭송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내가 그 시의 주인공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정호승>, <나태주>, <고은> 시인의 작품을 낭송할 때의 그녀는, 시인의 마음과 교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조용한 밤, 그녀의 낭송을 들으며 눈을 감으면, 시가 곧 삶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요즘같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윤설희의 시낭송은 ‘멈춤’이 주는 위로와 여백을 선물한다. 누군가에게는 하루의 끝에서 만나는 따뜻한 위로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하루를 살아갈 힘이 된다.

오늘 하루, 마음이 조금 지쳤다면, 윤설희의 시낭송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말로는 다 하지 못한 감정을, 그녀의 목소리가 대신 전해줄 것이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I 

아침 여섯시 어느동쪽이나 그만한 태양은 솟는 법인데 성
산포에서만 해가 솟는다고 부산피운다
태양은 수만개 유독 성산포에서만 해가 솟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나와서 해를 보라 하나밖에 없다고 착각해 온 해를 보라
성산포에서는 푸른색 이외에는 손을대지 않는다 설사 색맹일지라도 바다를 빨갛게 칠할순 없다
성산포에서는 바람이 심한 날 제비처럼 사투리로 말한다 그러다가도 해가 뜨는 아침이면 말보다 더 쉬운 감탄사를 쓴다 손을 대면 화끈 달아오르는 감탄사를 쓴다

성산포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여자가 남자보다 바다에 가깝다
술을 마실때에도 바다를 타서 마신다
나는 내말을 하고 바다는 제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맨 먼저 나는 수평선에 눈을 베었다 그리고 워럭 달려드는 파도에 귀를 찢기었다 그래도 할말이 있느냐고 묻는다
그저 바다만의 세상하면서 당하고 있었다 내 눈이 그렇게 유쾌하게 베인적은 없었다 내 귀가 그렇게 유쾌하게 찢어진 적은 없었다

모두 막혀 버렸구나 산은 물이라 막고 물은 산이라 막고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을때에는 차라리 눈을 감자 눈 감으면 보일거다

떠나간 사람이 와 있는 것처럼 보일거다 알몸으로도 세월에 타지 않는 바다처럼 보일거다 밤으로도 지울수 없는 그림자로 태어나 바다로도 닳지 않는 진주로 살거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 IV 

살아서 고독했던 사람 그 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아무리 동백꽃이 불을 피워도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그사람 빈자리가 차갑다
난 떼어놓을수 없는 고독과 함께 배에서 내리자마자 방파제에 앉아 술을 마셨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잔

이 죽일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나만 등대밑에서 코를 골았다 술에 취한섬 물을 베고 잔다 파도가 흔들어도 그대로 잔다
저 섬에서 한달만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뜬 눈으로 살자 저 섬에서 한달만 그리움이 없어 질때까지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수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은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죽는 이를 못보겠다 온종일 바다를 바라보던 그 자세만이 아랫목에 눕고 성산포에서는 한 사람도 더 태어나는 이를 못보겠다 있는 것으로 족한 존재 모두 바다만을 보고 있는 고립

바다는 마을 아이들의 손을 잡고 한나절을 정신없이 놀았다 아이들이 손을놓고 돌아간뒤 바다는 멍하니 마을을 보고있었다
마을엔 빨래가 마르고 빈집 개는 하품이 잦았다 밀감나무엔 게으른 윤기가 흐르고 저기 여인과 함께 탄 버스엔 덜컹덜컹 세월이 흘렀다
살아서 가난했던 사람 죽어서 실컷 먹으라고 보리밭에 묻었다 살아서 술 좋아하던 사람 죽어서 바다에 취하라고 섬 꼭대기에 묻었다 살아서 그리웠던 사람 죽어서 찾아가라고 짚신 두짝 놔주었다
365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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